우리나라에서는 미국에서의 영향력에 비해 커다란 명성을 얻지 못했지만 '컨트리 록(Country rock) 음악이
주류에 편성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미국의 '컨트리 포크 록 밴드(Country folk rock Band)',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The Nitty Gritty Dirt Band)'는 '캘리포니아(California)'주
'로스 앤젤레스(Los Angeles)'의 '롱비치(Long Beach )'에서 1966년에 결성되었습니다.
'밴드(Band)'의 출발은 '롱비치(Long Beach)'에 있는 악기 상점인 '맥케이브 기타 숍(McCabe's Guitar Shop)'에
자주 들려 '잼세션(Jam Session=재즈 연주자들이 모여서 악보 없이 하는 즉흥적인 연주)'을 벌이고는 했던
'제프 하나(Jeff Hanna, 기타, 만도린, 드럼, 하모니카, 베이스 & 보컬)' 와
'브루스 컨클(Bruce Kunkel, 기타, 카주, 보컬)'의 만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맥케이브(McCabe)' 악기점에서 자주 만나 '잼 세션(Jam Session)'을 벌이다 일명 생계형 밴드를
결성해보자는데 의견을 모으게 되며, '맥케이브(McCabe)' 악기점에 자주 출입하며 '잼 세션(Jam Session)'으로
실력을 다듬어 나가던 연주자들 중에서 두 사람에 의해 선택된 인물들은 '지미 패든(Jimmie Fadden)'을 시작으로
'랄프 바(Ralph Barr, 기타, 클라리넷)', '레스 톰슨(Les Thompson, 기타, 만돌린)',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더 로드-아웃/스테이(The Load-Out/Stay)'로 유명한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 기타)'이
그 주인공들이었습니다.
6인조 구성의 틀을 갖춘 '밴드(Band)는 '밴드(Band)'의 이름을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The Nitty Gritty Dirt Band)'라고
짓고 1966년 5월 부터 '롱비치(Long Beach)' 지역의 '클럽(Club)' 출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핀스트라이프(Pinstripe: 세로 줄 무늬 정장)를 입고 '카우보이(Cowboy)' '부츠(Boots)'를 신은 모습으로 공연 활동을
펼쳐 나가던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The Nitty Gritty Dirt Band)'는 무대 경험이 쌓여 가기 시작하면서 부터 기존의
'포크 록(Folk Rock)' 형식에 '컨트리(country)' 음악을 접목하기 시작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The Nitty Gritty Dirt Band)'가 이렇게 자신들의 음악적 방향을 다듬어 나가기 시작하던
1966년 8월에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이 '밴드(Band)'에서 탈퇴하여 첫번째 '멤버(Member)' 교체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을 대신하여 가입한 인물은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The Nitty Gritty Dirt Band)'의
'매니저(Manager)'를 맡고 있던 '윌리엄 맥뉴언(William McEuen)'의 동생인 '존 맥유엔(John McEuen)'이었습니다.
'기타(Guitar)'는 물론이고 '밴조(Banjo)'와 '만돌린(Mandolin)', 그리고 '피들(Fiddle)' 까지 능숙하게 다루는
'존 맥유엔(John McEuen)'의 가입으로 인해 '컨트리(Country)' 성향의 색채가 더욱 짙어진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The Nitty Gritty Dirt Band)'는 '리버티 음반사(Liberty Records)'와 계약하고 '데뷔(Debut)' 음반의
녹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1967년에 발표된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The Nitty Gritty Dirt Band)'의 '데뷔(Debut)' 음반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The Nitty Gritty Dirt Band)'는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Single Chart)'에서 45위 까지 진출한
'바이 퍼 미 더 레인(Buy For Me The Rain)'을 탄생시키며 성공적인 '데뷔(Debut)'를 하였습니다.
'싱글(Single)'의 성공은 '자니 카슨(Johnny Carson)'의 '투나잇 쇼(The Tonight Show)' 출연으로 이어졌고, 시대를
초월한 명곡으로 사랑받는 11분 짜리 대곡 '더 엔드(The End)'가 수록된 '데뷔(Debut)' 음반 '더 도어즈(The Doors)'를
1967년 1월에 발표했던 미국의 '록 밴드 '도어스(The Doors)'와 함께 순회 공연에 나서기도 하였습니다.
성공적인 '데뷔(Debut)' 이후 '브루스 컨트리 밴드(Blues Country Band)'에서 탈퇴하고
'크리스 대로우(Chris Darrow, 기타)'가 가입하게 되지만 일년을 채우지 못하고 또 다른 '멤버(Member)'인
'지미 이봇슨(Jimmy Ibbotson, 기타, 키보드)'으로 교체되었으며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The Nitty Gritty Dirt Band)'는
5인조로 축소가 되었습니다.
1970년 2월에 발표한 음반 '엉클 차리 앤드 히즈 독 테디(Uncle Charlie & His Dog Teddy)'에서 '밴드(Band)' 결성 이후
최고의 '히트(Hit)' 곡인 '미트터 보쟁글즈(Mr. Bojangles)'을 배출한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The Nitty Gritty Dirt Band)'는 이즈음 부터 '지미 패든(Jimmie Fadden)' 이 '드럼(Drum)'을
담당하게 되며,
미국의 '컨트(Country)'리 가수인 '제리 제프 워커(Jerry Jeff Walker)'의 1968년 곡을 '커버(Cover)'한
'미트터 보쟁글즈(Mr. Bojangles)'의 '히트(Hit)' 이후 약 5년간 '멤버(Member)' 변동없이 5인조로 활동해 나가던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The Nitty Gritty Dirt Band)'는 1973년 말에 '레스 톰슨(Les Thompson)'이 탈퇴하여 5인조에서
4인조로 다시 축소되었습니다.
1975년 까지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The Nitty Gritty Dirt Band)'와 함께 했던 '지미 이봇슨(Jimmy Ibbotson)'이
또 다시 '밴드(Band)'에서 탈퇴하자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The Nitty Gritty Dirt Band)'는
'존 케이블(John Cable, 기타)'과 '재키 클락(Jackie Clark, 기타)'을 가입시켜 5인조 체제를 유지하게 되었으며,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The Nitty Gritty Dirt Band)'는 5인조 구성으로 '밴드(Band)'를 재정비한 후 러시아(구 소련) 정부의
초청으로 러시아에서 공연을 하게 되는데 이는 미국 '밴드(Band)'로써는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The Nitty Gritty Dirt Band)'의 러시아 공연은 텔레비전으로 중계가 되어 1억 4천 5백만명의
러시아인이 '밴드(Band)'의 공연 모습을 시청했다고 합니다. 러시아 공연 이후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The Nitty Gritty Dirt Band)'는 또 다시 '멤버(Member)' 교체를 하여 7인조 체제를 갖춘 후
1978년에 음반 '더 더트 밴드(The Dirt Band)'를 발표하였습니다.
'밴드(Band)'는 이때 부터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라(The Nitty Gritty Dirt Band)'는 긴 이름을 '더트 밴드(Dirt Band)'로
짧게 줄여 사용하게 됩니다. 또한 이 음반 부터 '지미 패든(Jimmie Fadden )'은 '메럴 브레간티(Merel Bregante )'에게
'드럼(Drum)'을 넘겨 주고 다시 '기타(Guitar)'를 잡게 됩니다.
'더트 밴드(Dirt Band)'는 '멤버(Member)' 변동 없이 7인조로 1979년에 음반 '언 아메리칸 드림(An American Dream)'을
발표하였는데 이 음반에는 미국의 '컨트리 팝(Country Pop)' 가수 '린다 론스태드(Linda Ronstadt)'가 초청 가수로
참가하여 음반의 '타이틀(Title)' 곡인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에서 '더트 밴드(Dirt Band)'와 함께
노래를 하였습니다.
'더트 밴드(Dirt Band)'는 '린다 론스태드(Linda Ronstadt)'가 참여한 '싱글(Single)'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Single Chart)'에서 #13위 까지 진출시켜 '미스토 보쟁글즈(Mr. Bojangles)' 이후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으며 우리나라에도 '더트 밴드(Dirt Band)'라는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더트 밴드(Dirt Band)'는
현재 진행형이며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은 우리나라에서 '더트 밴드(Dirt Band)'를 대표하는 곡으로 애청 되고
있습니다.[이하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