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ny Cash 는 2차 세계대전 직후 Country 음악계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영향력 있는 활동을 펼친 Musician 중 한명이다. 깊고 낭랑한 중음역대의 Vocal과 간결한 Guitar와 함께 그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만의 진보적이고 독특한 Sound를 추구했다.
Country Music의 고향인 내쉬빌사운드(Nashville Sound), 홍키통크(Honky Tonk), 로큰롤(Rock'n'Roll), 그 어떤 것에도 치우치지 않은 자신만의 서브(西部) Genre를 만들고 구축했다.
감성적으로 무디고 정직한 Folk와 반항적인 Rock'N'Roll 그리고 염세적인 Country Music 사이의 중간지점에서 Johnny Cash는 Rock'N'Roll의 탄생과 반항적 태도 그리고 다분히 Rock 적인 간소함과 솔직한 음악적 발성법을 적절히 융화시켜냈다. 거기에는 깊은 역사적 공감대가 존재했다.
그는 음악적 사명을 다하는 그 날까지 100곡이 넘는 Hit Single을 내며 흑과 백 모두에게 인정받았고, 특히 록의 황제(King of Rock) Elvis Presley를 비롯해 한 시대를 풍미한 당대의 거목들 (Carl Perkins, Jerry Lee Lewis, Chuck Berry)과 함께, 1950년~60년대를 빛낸 로커빌리 (Rockabilly)음악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였다.
Arkansas 출신인 Johnny Cash는 세 살 때에 다이에스(Dyess)로 이주했다. 열둘 어린나이에 그는 이미 자신의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 들은 Country 음악에, 음악적 영감을 얻은 그는 고등학교시절 Arkansas 라디오 방송국(KLCN)에서 노래했다. 대학을 졸업한 1950년에는 자동차회사에 취직해 Detroit로 거처를 옮겼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그는 공군에 입대했다. 공군에 있는 동안 Johnny Cash는 Guitar를 구입해 스스로 연주를 익혔다. 그는 "Folsom prion blues"를 포함해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Johnny Cash는 1954년 공군에서 예편해 Texas 여성 비비안 리베르토(Vivian Leberto)와 결혼했다. Memphis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그는 라디오 아나운서 과정을 밟았다. 밤에는 Guitarist, Luther Perkins와 Bassist, Marshall Grant로 구성된 Trio의 일원으로 Country 음악을 연주했다.
지방 라디오 방송국(KWEM)에서 무료로 공연을 간간히 겸하면서 안정된 연주의 기틀을 마련하던 Trio는 Sun Records사에 오디션(Audition)을 볼 기회를 잡게 된다.
마침내 1955년 Sam Phillips가 설립한 Sun Records사에 Audition을 치르게 된 Johnny Cash는 처음에 자신을 Gospel singer로 소개했다. Phillips는 Johnny Cash에게 좀 더 상업적인 것을 요구했고, 그는 "Hey Porter"로 곧 Phillips를 매료시켰다.
이를 계기로 Johnny Cash는 자신의 Debut Single, "Cry Cry Cry'/Hey Poter"를 발매하게 된다. Phillips는 Single Records에 Johnny Cash를 “Johnny”라고 기입했다. Record producer는 또한 Luther Perkins와 Marshall Grant를 테네시 투(Tennessee Two)라고 불렀다.
1955년에는 "Cry Cry Cry"가 인기를 얻으며 Country Chart #14위에 올랐다. 그리고 루이지애나 헤이라이드(Louisiana Hayride) 지역에서 거의 1년간 머물렀다.
두 번째 Single, "Folsom prison blues"가 1956년 초 Country Chart #4위의 쾌거를 올렸고, 연이어 "I walk the line"이 6주간 #1위를 차지함과 더불어 Pop Chart도 Top #20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957년에도 Country Chart #13위에 Rank된 "Give my love to rose"를 포함해 몇 곡의 Hit곡을 내며 Hit 행진을 이어갔다. Johnny Cash는 또한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타 Musician들과 달리 완전히 검정복장으로 그해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에 Debut했다.
이로 인해 그는 "Man In Black"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리고 1957년 11월에 그는 드디어 자신의 처녀작 "Johnny Cash with his hot and blue guitar"를 발매해 음반매장을 강타했다.
1958년에는 10주간 Chart 정상을 지킨 "Ballad of a teenage queen"을 비롯해 또 다른 넘버원 Single "Guess thing happen that way"을 포함해 무려 8곡을 컨Country와 Pop Chart에 상위권에 올리며 성공가도를 질주했다.
Orange Blossom Special - Ervin T Rouse
(from the album "The Rosinators") Will Sneyd : fiddle, vocals, Fliss Premru : fiddle, vocals, Paul Castle : guitar, vocals
"Orange Blossom Special" 은 1938년 얼빈 T. 루스(Ervin T. Rouse)에 의해 씌여졌다.
"Orange Blossom Special" 은 당시 Florida 주의 Miami 에서 대서양 연안을 따라 New York 으로 이어지는 "Seaboard Railroad(해안철도)" 를 운행하던 열차의 이름이었고, 이 열차는 1930년대에 전 세계에서 가장 힘 좋고 빠른 열차로 소문나 있었다.
Ervin T. Rouse 는 그의 두 동생인 골디(Gordie), 어얼(Earl)과 함께 바이얼린을 연주하 며 다녔다.1937년의 어느 날 얼빈은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나오던 길에 Miami의 "Seaboard Railroad(해안철도)" 역에 머물러 있던 "Orange Blossom Special" 을 보고 악상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정작 이 곡을 음반으로 취입하기 위해 그의 동생 고디(Gordie)가 살고 있는 New York 의 RCA사에 갈 때까지 "Orange Blossom Special" 을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 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는 이 열차를 타보지도 않고 느낀 인상을 작품으로 옮긴 셈이다.
이 곡은 후에 Bluegrass 명곡이 되어 많은 가수들에 의해 연주되고 불리워졌지만 Hit Chart 에서는 잠잠했다.
Orange Blossom Special - Johnny Cash
Look a-yonder comin' Comin' down that railroad track Hey, look a-yonder comin' Comin' down that railroad track It`s the Orange Blossom Special Bringin' my baby back
Well, I'm going down to Florida And get some sand in my shoes Or maybe Californy And get some sand in my shoes I'll ride that Orange Blossom Special And lose these New York blues
"Say man, when you going back to Florida?" "When am I goin' back to Florida? I don't know, don't reckon I ever will." "Ain't you worried about getting your nourishment in New York" "Well, I don't care if I do da do da do da"
Hey talk about a-ramblin' She's the fastest train on the line Talk about a-travellin' She's the fastest train on the line It's that Orange Blossom Special Rollin' down the seaboard line
저기좀 봐 열차가 다가오고 있잖아 이봐, 멋있는 기차가 정거장으로 들어온단 말이야 내 애인을 태운 오랜지꽃 특급열차 가 들어오고 있다니까.
나는 플로리다로 가고 있다네 백사장을 거닐 작정이야. 어쩌면 모래밭이 더 좋은 캘리포니아로 갈지도 모르겠는걸 울적했던 뉴욕 생활을 버리고 나는 오랜지꽃 특급열차 를 탈테야
"여보시요, 플로리다에 언제나 돌아올려오~?" "플로리다에 언제 돌아 가겠냐구요, 글쎄 아직 계획을 모르겠는걸" "뉴욕에 가면 잘먹고 지낼 수 있을까?" "글쎄, 그런 걱정을 할 바 아니잖아~~ 부닥쳐 봐야지~~"
여보게, 얼마나 빠르던가 그 열차는 가장 빠른 기차이던데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그 기차 말일세. 빠른 기차이던데 해안선을 달리는 "오랜지꽃 축제 특급열차"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