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Mozart)'의 미완성 오페라 '자이데(Zaide)'
모차르트[Mozart]는 어떤 사람이었나?
평생 돈이 없어 안정된 직장을 구하느라 돌아다니면서도 자선음악회에서 연주를 했고, 자신은 돈을 위해 작품을 써야 했으면서도 친구가 알코올 중독으로 약속한 곡을 쓰지 못하게 되면 대신 써주었다.
어떤 여인에겐 입에 담을 수 없는 정도의 더럽고 외설적인 편지를 쓰며 성적인 상대이상으로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또 어떤 여인을 만나면 여자를 신처럼 모시며 거의 숭배했다.
음탕하고 게임과 도박을 좋아했으면서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신앙심이 깊었다. 남을 배려하는 사람인가 하면 주위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언행이 허다했으며, 성격의 변화가 무쌍해 정신이 없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인간적이며 진지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다중복잡한 모든 성격도 다 용서받는다. "세기의 천재" 이기 때문에 영혼이 맑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천재이기 때문에.~~~
1756년 오스트리아(Austria) 잘츠부르크(Salzburg)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Leopold Mozart)는 아들이 천재라는 사실을 알 때까지는 채 5년이 안 걸렸고, 불과 1년 후인 1762년부터 4살 위인 누나 나네를(Nannerl)과 모짜르트(Mozart)를 데리고 온 유럽으로 연주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자신보다 더 낳은 삶, 부와 명예를 갖기 원했기 때문에 아이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려 연주여행을 한 것이었으나 이 기간이 10년이나 지속되었고 아이들이 장거리 여행 때문에 병이 나기도 했으므로 자식을 앞세워 돈벌이를 한다는 지탄을 피할 수는 없었다.
궁정 악단의 바이올린 주자였던 레오폴드(Leopold Mozart)가 이렇게 가족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고용주였던 슈라텐바흐(Schlatenbach) 대주교가 모차르트(Mozart) 가족을 좋아했고 휴가를 줌에 있어서 관대 했던 덕분이었는데, 1771년 슈라텐바흐(Schlatenbach)가 사망하고 엄격한 대주교 콜로레도(Colloredo)가 부임하는 것으로 가족여행을 끝이 났다.
콜로레도(Colloredo)는 고용인은 단지 고용인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서 음악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차르트(Mozart)의 음악성을 인정해 궁중 악단의 부지휘자로 임명하면서도 하인들과 같이 식사하도록 했으며 외국에 나가서 귀족들과 친분을 쌓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레오폴드(Leopold Mozart)는 휴가를 요청하고 콜로레도(Colloredo)가 또 거절 하는 일이 발생했는데,(마침 오스트리아(Austria) 황제 요제프2세(Joseph II)가 잘츠부르크(Salzburg)를 방문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콜로레도(Colloredo)는 모든 궁정악단 단원들이 행사에 참석하라고 명했다.)
가장이었던 레오폴드(Leopold Mozart)는 하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였으나 아직 철없던 모차르트(Mozart)는 거꾸로 자신을 이런 상태에서 풀어달라는 편지를 보내고야만다. 당연히 해고됐다. 하지만 속이 타는 아버지의 마음은 모른 채 모차르트(Mozart)는 이 속박에서 벗어난 것이 행복했고, 이제 다시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다시 시작한 모차르트는 뮌헨(Munchen) 으로, 파리(Paris)로, 만하임(Mannheim)으로 옮겨 다니며 연주를 했고, 가는 곳마다 일자리를 구하고 또 구하고 또 거절당했다. 이렇게 돌아다니던 1777년, 아우크스쿠르크 (Augsburg)에서 사촌이었던 베슬레(베슬레는 애칭이다. 본명은 '안나 마리아 테클라로(Maria Anna Thekla)', 모차르트(Mozart)의 사촌누이이다.)를 만나게 되고 1778년, 만하임(Mannheim)에서 그는 운명의 사랑 알로이자 베버 (Aloysia Weber)를 알게 된다.
사촌, 베슬레(원래 이름은 마리아 안나 테클라(Maria Anna Thekla)이지만 베슬레라는 애칭으로 불렸다.)와의 사랑은 모차르트(Mozart)의 첫사랑이라고 해도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촌과의 결혼도 인정될 당시 베슬레는 모차르트(Mozart)와 결혼까지 생각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모차르트(Mozart)에게 그녀는 단지 성적인 유희의 대상일 뿐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니었다.
그녀는 적당히 예쁘고 적당히 저속했으며 적당히 외설적인 유머를 즐기는 종류의 여자였다. 모차르트(Mozart)는 '그녀를 그 아이는 예쁘고 재치 있고 똑똑하고 쾌활 합니다. 우리는 약간 음탕하다는 점에서 아주 잘 맞습니다.'라는 편지를 아버지에게 보낸 적이 있었다. 모차르트(Mozart)의 인생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쓰던 사람들은 이들의 관계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술하기를 꺼려할 정도였는데 이럴 정도로 상스럽고 어린 아이 같은 이 사랑은 알로이자 베버(Aloysia Weber)를 사랑하게 되면서 일단락된다.
당시 16살이었던 알로이자 베버(Aloysia Weber)는 제본업자 베버(Weber)의 4딸 중 둘째 딸로서 이미 성악가로 알려진 여인이었다. 그녀의 노래에 매료된 모차르트(Mozart)는 바로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녀에게 아리아(Aria) k.294를 바친다. 하지만 만하임(Mannheim)에 기거하는 몇 달 동안 사랑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모차르트(Mozart)에게 알로이자(Aloysia Weber)는 비교적 냉담했다.
음악가로서의 모차르트(Mozart)는 인정하고 존경했지만 남자로서의 모차르트(Mozart)는 그녀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만하임(Mannheim)에서 일자리를 얻는 것에 실패한 모차르트(Mozart)가 3개월간 파리를 다녀온 후 다시 알로이자(Aloysia Weber)를 찾아갔는데 이 때 그녀는 정식으로 그의 사랑을 거절하고야 만다. 실연 당했다. 눈물로 날을 지새웠다. 그가 진지하게 어쩌면 너무나 숭고하게 생각할 정도로 사랑했던 첫 여인에게 버림을 받은 것이다.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너무나 슬퍼서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잘츠부르크(Salzburg)로 돌아갔다. 잘츠부르크(Salzburg)는 그에게 구속과 복종으로 가득한 기억만 남아있던 끔찍한 고향이었다. 뮌헨(Munchen)에서 오페라(Opera) 제의가 들어왔을 때, 거기서 직장을 잡고 싶은 마음에 오페라(Opera) "이도메네오(Idomeneo)"를 온 힘을 다해 작곡했지만 오페라(Opera)만 성공을 거두고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그러던 1780년, 알로이자(Aloysia Weber)는 배우였던 오제프 랑에(Joseph Lange)와 결혼을 했다. 또 다시 잘츠부르크(Salzburg)의 대주교와 심한 의견 대립을 일으킨 모차르트(Mozart)는 궁정악단에서 또 다시 해고가 되면서 빈(Wien)으로 거취를 옮겼다. 빈(Wien)은 알로이자(Aloysia Weber)와 그의 가족이 사는 곳이었다.
빈(Wien)에 거주하는 동안 베버(Aloysia Weber)가에서 살던 모차르트(Mozart)는 이번엔 알로이자(Aloysia Weber)의 동생 콘스탄체(Constanze Weber)에게 눈길을 돌렸다. 콘스탄체(Constanze Weber)에게 미안하고 알로이자(Aloysia Weber)를 조금 더 옆에서 보고 싶어서라 표현해도 그녀에게는 위안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인 것이 콘스탄체(Constanze Weber)에게 마음을 표현하면서도 1782년에 알로이자(Aloysia Weber)를 위해 아리아(Aria)를 또 작곡했기 때문에~~
사랑하던 여자의 동생과 결혼하겠다는데 찬성하는 아버지가 있을까. 심한 반대가 있을 줄 뻔히 알고 있던 모차르트(Mozart)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띄운다.
"속옷이나 주위의 물건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저에게는 아내가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아내가 있으면 지금보다 훨씬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구와 결혼하려는지 혹시 아세요? 놀라지 마세요. 베버가의 딸이랍니다".
(모차르트[Mozart]는 무슨 일이 나기만 하면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그에게 파파보이 기질이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했던 긴 시간의 연주 여행과 교육이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도 우리는 고마울 따름이다. 그 편지들을 통해서 생전 모차르트[Mozart]의 마음 속 깊이 있던 많은 이야기들을 훔쳐 볼 수 있으니까.)
모차르트(Mozart) 아버지의 반대는 당연했고, 베버(Aloysia Weber)가에서도 둘째 딸을 좋아했었고 그 집에 기거하기도 했던 모차르트(Mozart)를 사윗감으로 탐탁하게 여길리 만무했다. 베버(Aloysia Weber)가에서는 모차르트(Mozart)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법적인 절차가 필요하다 생각했고, 3년 내에 결혼하지 않으면 벌금으로 300굴덴을 내야한다는 서약서에 싸인할 것을 요구했다.
모차르트(Mozart)는 여기에 서명했으며 바로 그 다음날 콘스탄체(Constanze Weber)와 슈테판 성당(Stephansdom)에서 결혼을 강행하고, 이 결혼을 기념해 미사곡 c단조를 작곡한다.
사사건건 아버지에게 보고하고 또 그 아버지의 의견에 따랐던 모차르트(Mozart)로서는 획기적인 반항이었다. 모차르트(Mozart) 자신이 "예쁘지는 않지만 이런 여자와 결혼하면 잘 살 것 같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열정이 부족한 결혼이었지만 그는 콘스탄체(Constanze Weber)와 세상을 떠날 때 까지 그러니까 9년간 나름대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린다. 콘스탄체(Constanze Weber)가 시기가 많고 정숙하지 만은 않은 여인이었긴 하지만 모차르트(Mozart)는 그 면을 표면에 드러내어 싸우기 보다는 보듬어 가며 잘 살아보고자 노력했다. 모차르트(Mozart)가 아내 콘스탄체 (Constanze Weber)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이다.
"여자는 항상 자신이 스스로 존경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쉽지요. 나의 사랑, 너무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걸 용서해요. 하지만 우리의 행복과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군요~ 필요 없는 질투로 자신과 나를 괴롭히지 말고 나의 사랑을 믿어요. 아내가 남편을 묶어둘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녀의 점잖은 행동일 뿐이란 것을 생각하세요"~
물론 모차르트(Mozart)도 완전히 정숙한 결혼생활을 했다고는 할 수 없다. 결혼 5년째 접어든 1786년, 그의 제자 스테판(Stefan)의 누이인 낸시 스토라체(Nancy Storace)(원명: 안나 셀리나 스토체 Anna Selina Storace)를 만나게 되는데, 알로이자(Aloysia Weber)보다 훨씬 더 인정받고 있던 소프라노(Soprano) 였다. 그녀는 모차르트(Mozart)의 오페라(Opera) "피가로(Figaro)의 결혼"의 주인공 수잔나(Susanna) 역을 처음으로 연기한 성악가이기도 했다.
그들은 음악의 공통분모 위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녀를 위해 연주회용 아리아(Aria) k.505를 작곡했는데 자신이 피아노를 치고 낸시 스토라체(Nancy Storace)가 노래하려고 작곡했고, 또 실제로 같이 연주했다. 그 작품에 모차르트(Mozart)는 스토라체(Nancy Storace) 양과 나를 위하여. 라고 적어 놓았다. 그 후 낸시(Nancy Storace)는 가족들과 함께 런던으로 향했으나 얼마 후 빈(Wien)으로 돌아오려던 그녀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모차르트(Mozart)와의 인연을 끝내기에 이른다.
1790년 "코지 판 투테(Cosi Fan Tutte KV 588)"의 초연을 성공리에 마친 이후부터 모차르트(Mozart)는 예전부터 앓고 있던 신장병의 후유증으로 류마티즘과 두통으로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도 여전히 어려운 상태였고, 결혼 초 첫째 아이를 잃은 후 계속된 출산으로 콘스탄체(Constanze Weber)의 건강도 많이 나빠진 상태였다.
그녀와 같이 보헤미아(Bohemia)왕 등극 축하 오페라(Opera)를 위해 프라하(Praha)에 다녀온 후부터는 건강이 더욱 악화되다가 1791년에는 의사로부터 사지가 굳는 증세와 가끔씩 기절하는 증상이 치유불가라는 판정을 들었고, 점점 마비증세가 심해지다가 그해 12월 5일 혼수상태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1막 3장에서 나오는 이 아름다운 '아리아(Aria)'는 유럽의 귀족 아가씨에서 '오스만 투르크 술탄(Osman Turk Sultan )'의 애첩이된 '자이데(Zaide)'가 역시 노예로 잡혀온 청년 '고마츠(Gomatz)'를 향한 사랑의 아리아(Aria )~~
여주인공 '자이데(Zaide)'가 곤히 자는 자신의 연인 '고마츠(Gomatz)'를 바라보며 편히 쉬라고 위로하며 언젠가는 그의 사랑의 꿈이 이루어지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오늘날 오페라는 거의 상연되지 않지만 이 아름다운 '아리아(Aria)' 만큼은 자주 연주되고 있습니다.
작곡 :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 형식 : 전 2막의 징슈필(미완성) Singspiel 대본 : 세바스티아니 (Franz Joseph Sebastiani)의 징슈필 대본 후궁 Das Serail에 기초한 샤하트너(Johann Andreas Schachtner)의 독일어 대본, 초연 : 1866년 1월 27일, 프랑크프르트에서 미완성분을 보완하여 초연.
등장인물 : 고마츠(Gomatz) : 술탄의 젊은 유럽인 노예 자이데(Zaide) : 후궁의 여인. 고마츠의 여인 알라침(Allazim) : 술탄의 노예이자 측근 졸리만(Soliman) : 술탄 오스민(Osmin) : 술탄의 부하
술탄 과 노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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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교향곡 25번 1악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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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마데우스'의 첫머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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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쾌한 선율과 화사한 현악기들의 움직임이 재미의 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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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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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비라 마디간'때문에 유명하지만 영화가 아니더라도 이 안단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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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장은 피아니스트들 조차 아끼는 부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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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
클라리넷 5중주 1악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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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가 쓴 단 한편의 클라리넷 5중주는 쉬타들러란 막역한 친구를 위해 쓴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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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 4중주 플러스 클라리넷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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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
디베르티멘토 K.136 1악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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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베르티멘토란 `희유곡', 더 간단히 말해 즐거움을 위한 음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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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하고 빠른 피크닉 스타일의 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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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
오페라`피가로의 결혼'중 몇몇 아리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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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부인이나 소년(메조 소프라노가 부른다) 케루비노의 아리아가 일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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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오페라중 가장 밝고 유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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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e Sanft Mein Holdes Leben(편히 쉬세요) Soprano, Edith Mathis,
Ruhe Sanft, Mein Holdes Leben, Schlafe, bis dein Gluck erwacht; Da, mein Bild will ich dir geben, Schau, wie freundlich es dir lacht:
편히 쉬어요, 내 사랑스런 연인, 주무세요, 그대의 행운이 깨울 때까지 여기, 제 초상화를 당신께 드립니다 보세요, 얼마나 상냥하게 당신께 미소짓는지
Ihr sussen Traume, wiegt ihn ein, Und lasset seinem Wunsch am Ende Die wollustreichen Gegenstande Zu reifer Wirklichkeit gedeihn.
그대의 달콤한 꿈이여,그를 편히 잠들게 하라 그리고 마침내 그의 사랑의 꿈의 바람이 현실로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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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편집 : 애 풀 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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