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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 앵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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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봄, 막 대학에 들어가 역사학을 공부하게 된 여학생의 귀에 어떤 노래가 들어왔습니다.
그 노래가 마음에까지 들어오자 여학생은 악보를 구하여 자신이 불러보고 싶었으며, 그 노래를 1970년에 작곡한
청년은 악보를 이미 찢어버렸답니다.
하지만 찢어진 악보 조각들이 남아 있었고, 그것을 구한 여학생은 조각들을 이어 붙이고 노래를 불렀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작곡한 사람을 직접 만나게 되고, 이렇게 양희은이 '아침이슬'을 만났고, 김민기를 만났답니다.~ㅎㅎ
'아침이슬'은 작게는 한국 대중음악에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될 '싱어송라이터(Singer-song Writer)'들 중
한 사람인 김민기와 한 시대를 대표하게 될 가수 양희은을 만나게 했습니다.
양희은을 눈여겨본 사람들 덕에 음반을 발표할 수 있게 되자 곧 독집음반을 내게 될 김민기가 '아침이슬'을 양희은이
먼저 음반에 싣도록 배려를 했고, 녹음작업까지 도왔답니다. 그렇게 양희은의 데뷔앨범인 <고운 노래 모음 / 1971>이
나왔고, '아침이슬'은 세상과 만난 것입니다.
'포크(Folk)'의 시대라고는 해도 외국의 곡들을 번안하여 부르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던 때에 한국에 사는 젊은이들의
정신을 대변하는 노래의 등장이었으며,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자기네 이야기를 노래로 직접 만들어 부르는 것이 남다른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대중가요에도 깊은 사유가 들어갈 수 있음을 알게 되고, 나아가 그런 노래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도었습니다.
음악적으로 '아침이슬'은 노래하는 이의 음색과 성량이 안정된 상태로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음역대과 멜로디를
가지고 있으며, '포크(Folk)'의 품 안에 있지만 '클래식(Classic)'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할 수 있는 화성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으면서 대중 그 누구나 좋아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곡이지요, 굳이 빗대어 말해야
한다면, 영국에 '비틀스(The Beatles)'의 '예스터데이(Yesterday)'가 있고 한국에는 '아침이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군사정권은 '아침이슬'의 이러한 가치를 알아보고 '국민'에게 권할만한 '건전가요'로 선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나가 그들은 '아침이슬'의 또 다른 가치를 알아보았고, 금지곡으로 묶어버렸스니다. 우습게도 군사정권이 이 노래의
서정성과 저항성이라는 두 개의 가치를 모두 알아본 셈입니다.
그러나 음반을 사서, 혹은 방송을 통하여 이 노래를 듣지 못하게 할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입까지 막지는 못했으며,
우울하면서 아름다고, 어두우면서 우아한 '아침이슬'은 이내 누군가의 방으로, 청년들의 화기애애한 모임으로,
결의에 찬 표정으로 어깨동무를 한 학생들이 행진하는 교문 밖으로, 시대를 고민하고 아픔을 나누는 이들이 모인
거리까지 퍼져나갔습니다.
작곡한 김민기도, 노래한 양희은도 작은 노래 하나가 자신들의 뜻을 넘어 세상에서 더 큰 생명력을 갖게 된 것에 놀랐고,
노래가 제 스스로 생명을 얻어간 것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아침이슬'은 70년대를 넘어 80년대에도, 90년대에도
불려졌습니다.
음반 대신 악보로 인쇄되었고, 사람의 입과 기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제 발로 찾아갔고, 이렇게 '아침이슬'은
청년의 조용한 노래에서 거리의 치열한 노래로, 그리고 시대의 묵직한 노래로 성장해갔습니다. 새로운 정서와 기법으로
태어난 창작곡이 저항가요의 대표로 이름을 올리는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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