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Time’과 ‘Life'가 각각 20세기의 위대한 인물 100인을 선정해 발표했는데, 이 두 잡지에 함께 들어간 대중 음악가가 한 명 있었지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마이클 잭슨도, 그의 장인 엘비스 플레슬리도, 영국의 비틀스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1971년 7월 6일 세상을 떠난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이었습니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은 1901년 스페인과 프랑스 문화가 녹아있는 루위지아나(Louisiana)주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바람이 나서 가족을 버렸고 어머니도 가출해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은 할머니의 손에서 컸습니다. 축제 때 삼촌의 총으로 축포를 쐈다가 체포돼 소년원 생활을 해야 했는데, 여기에서 서양나팔 코넷을 배웠습니다.
그는 출소 후 코넷 주자인 스승 킹 올리버(King Oliver)의 영향을 받아 음악의 지평을 확대하며 재즈의 정착과 확산에 기여합니다. 특히 1928년 스승의 곡을 편곡한 ‘West end Blues’는 재즈의 본격적 출범을 알리는 곡으로 평가받습니다.
천대받던 악기 트럼펫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렸으며 가사가 없는 ‘스캣 창법’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스미소니언(Smithsonian) 연구소의 빌리 마틴(Billy Martin) 박사가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이 20세기를 만들었다고 확신한다”고 말할 정도로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은 대중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3년 워커힐 개관기념 내한공연 때 15세 소녀 윤복희를 발탁해서 미국으로 데리고 간 것으로 유명하죠. 20여 년 뒤 ‘What a Wonderful World’가 한 맥주의 광고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다시 바람이 불었지요.
어떤 사람은 그를 지나치게 대중적이라고 비난하지만 저는 그의 음악에서 따뜻한 인간애와 우수를 느낍니다. 심지어 다른 연주자보다 한 옥타브 높은 트럼펫 음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그가 받았을 온갖 차별을 승화하는 과정에서의 슬픔과 원숙함을 느낍니다.
38년 전 그는 갑자기 닥친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심장발작이 오기 직전 마치 삶을 정리하기라도 하는 듯 “나는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따뜻한 가슴으로 역경을 이겼지만 심장병은 이기지 못했습니다. 최근 세상을 떠난 마이클 잭슨도, 엘비스 프레슬리도 심장병이 사인이었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군요. 심장병과 뇌졸중은 어느 순간에 갑자기 와서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더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