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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 와 우표_Part-04

애풀잭 2009. 8. 5. 05:11



21. 이황과 이이





이황은 주자학을 집대성한 조선의 성리학자이자 문신으로서 이기이원론을 더욱 발전시켜 주리(主理) 철학을 확립시켰으며, 성(誠)을 기본으로 일생동안 경(敬)을 실천하고 '앎과 행함'이 일치하는 지행병진을 학문의 기본 자세로 삼았다. 이이는 주기론의 입장에서 관념적 도덕 세계와 더불어 경험적 현실 세계를 존중하는 새로운 철학 체계를 수립하여 일원론적 이기이원론을 주장하였다. 또한 학문을 현실 정치에 반영하고자 노력하여 공납 제도의 폐단을 줄이려는 수미법의 시행과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다.
 


22. 정 약 용





조선후기의 실학자로 호는 다산, 여유당이다. 유형원, 이익을 이어 실학을 집대성한 위대한 인물이다. 벼슬이 부승지에 이르렀으나 천주교를 옹호하다가 신유사옥 때 강진으로 귀양을 갔다. 그곳에서 19년동안 학문에 몰두하여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의 역사적 고찰을 통해 정치 기구의 전면적 개혁과 지방 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 균점, 노동력에 의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지 등을 주장하였다
 

 

23. 홍 영 식



 

조선 말기의 정치가 1881년 신사 유람단에 끼여 일본에 다녀 왔으며 이어 전권 부대사로 미국에 다녀왔다. 우편 사무를 담당하는 우정국의 시자로 임명되었으나 1884년 우정국 낙성식 축하 잔치를 기회로 일어난 갑신정변에 가담, 정변이 실패하고 사형당하였다.

 

24. 이 준




이준은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릴 만국 평화 회의에 참가하여  한국의 억울함을 열국 대표들에게 호소하기 위하여 고종의 밀조와 친서를 품고 헤이그에 갔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참석하지 못하여 분사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 중장이 수여되었다.

 

25. 안 중 근




안중근은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1905년 을사 조약이 체결되자, 일본의 처사에 분격하여 강원도 의병에 참가하여 해삼위(海蔘威) 등지로 도망하였다. 거기에서 다시 군대를 모아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1909년 10월 그는 초대 한국통감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만주 하얼빈에서 사살한 뒤 체포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다음 해 3월에 여순의 감옥에서 사형당하였다.


25-1  순국직전의 안중근 의사

 

 

26. 유 관 순





3·1운동 때의 순국 소녀. 이화 학당 고등과 1학년생으로 3·1운동에 참가하여 중앙에서
활약하다가 고향으로 내려가 천안·연기·청주·진천 등지를 총궐기시켜 아내(병천)장터 사건을 일으키고 주모자로 검거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부모가 총살되었고, 갖은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재판을 거절, 옥중에서 열렬히 투쟁하다가 마침내 숨지고 말았다.
 

 

27. 안 창 호


독립 운동가·교육자. 호는 도산(島山)이다.
일생을 정직과 성실로써 겨레와 나라를 위하여 헌신 분투한  인격자이며 독립 운동의 거성이다.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지자 1906년 귀국하여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 실력을 배양함으로써 독립을 찾으려는 운동을 벌여 대성학교를 세웠다. 1909년에는 청년학우회를 조직하여 민족 계몽을 적극 밀고 나갔고, 1913년 미국으로 가서 흥사단을 조직 활약하였다.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 정부의 내무총장, 노동 총판 등을 역임하다가, 1932년 윤 봉길 의사의 거사 후 일경에 체포되어 복역후 가출옥되었다. 1937년에 동우외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병 보석으로 입원 가료 중 세상을 떠났다.
 

 

28. 김 구


독립운동가. 호는 백범(白凡).
1896년 2월 안악에서 일본 육군중위 쓰치다를 살해하고 체포되어 인천 감리영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사형집행 직전에 왕의 특명으로 죽음을 면하고 탈옥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난 후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 민국 임시 정부 경무 국장에 취임하였다. 이어 내무 총장·국무령·국무 위원·주석을 지냈고, 이 봉창 의사의 의거, 윤 봉길 의사의 의거 등을 지도하고, 광복군을 설치하여 입국 항전을 계획하던 중 조국의 광복을 맞아, 1945년 11월 5일에 귀국하여 조국 통을을 위해 힘썼으나 1948년에 서울 경교장에서 암살되었다.
 

 

29. 윤 봉 길




 

항일 독립의사.
1926년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한 · 중 항일 동맹에 가입하고, 일본인 거물급을 암살할 것을 꾀하던 중 대한 민국 임시 정부 주석 김구와 굳게 약속한 후, 1932년에 훙코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의 천장절 축하식단에 폭탄을 던져 사령관 시라카와대장을 죽이고, 시게미쓰 대사 · 노무라 해군 대장에게 부상을 입히는 등, 온 세계를 놀라게 하고 피검되어 일본으로 압송되어서 오오사카에서 처형되었다.


29-1 거사 직전 기념사진

 

30. 이 봉 창



 


    독립 운동가.
    어려서부터 일본 사람 밑에서 고용살이를 하였던 그는, 일본 사람들의 횡포와 압박이 뼈에 사무쳐 있었다. 25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방랑 생활을 하다가 1931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김구의 영도아래 있던 '한인 애국단'에 가입, 일본 천황의 암살을 결심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32년 일본 천황이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목에서 폭탄을 던졌으나 실패하고 체포되어 사형을 당하였다.

    30-1  거사 직전 기념 사진

     

    31. 김좌진의 청산리 대첩





    김좌진은 독립 운동가 5세 때에 사람에게 차별이 있을 수 없다 하여 집안의 종들을 해방시키고 소작 농지를 무상배부 하였다. 청년 학우회 회원 <한성일보> 이사고 있다가 3·1운동 때 만주로 가서 북로군정서를 조직하여 총사령이 되고, 사관 양성소도 설치하고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였다. 1920년 나 중소·이 범석 등과 함께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파하였다


    31-1  김좌진 장군
     

     

    32. 마라톤 올림픽 제패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그 기쁨은 반절의 기쁨이었다. 일제 식민 치하였기 때문에 그는 일장기를 달고 뛰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56년후 1992년 8월 9일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자랑스런 태극기를 가슴에 단 황영조가 일본의 모리시타를 22초 따돌리고 금메달을 땄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올림픽 마라톤에서 첫 금메달을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32-1  우승자 손기정

     

    33. 4월 혁명





    1960년 4월 혁명은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싸웠던 자랑스런 민주주의 투쟁의 기록이다. 이 4월 혁명으로 이승만 자유당 독재는 무너졌고, 국민들은 승리감에 만끽했다. 그때 희생된 200여명의 넋은 지금 4월이 되면 흐드러지게 피는 진달래로 피어난다.

    33-1   광화문의 시위 군중

    33-2   무너지는 독재 권력
     

     

    34. 5.16 쿠데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다. 고려시대 무신집권기 100년 이후 우리 나라 역사에 2번째의 무신권력이 등장한 셈이다. 이 군사 정권은 전두환, 노태우라는 박정희의 아류들에 의해 계승되다가 1992년 끝이 난다. 92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이전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정부를 문민정부라고 칭하며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일정 정도 그들과의 타협을 통한 권력 장악이었기 때문에 많은 한계를 가졌다.

    34-1  쿠데타 주역들 

     

    35. 박정희 말기 한국과 미국의 갈등



     


      미국의 카터 행정부는 줄기차게 주한미군 감축을 추진했고, 유신 체제의 인권 탄압을 문제 삼았다. 이로 인해 박정희 정권과 심각한 갈등이 고조되었다. 박정희는 이무렵 자주 국방을 매우 강조했으며, 비밀리에 핵개발을 시도했으나 미국의 압력으로 좌절된다. 이렇게 갈등이 고조된 속에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대통령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시해된다.
       

       

      36. 박정희의 죽음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의 죽음으로 하루 아침에 유신체제는 붕괴했다. 김재규는 "야수의 심정으로 독재의 심장을 쏘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대통령을 죽였다고 했다. 그는 의사인가? 단순한 시해범인가? 아직도 규명되지 못한 부분이다.


      36-1   독재자의 마지막

      36-2   시해사건 선고공판

      36-3  인간 박정희


       

      37. 전두환 대통령의 집권



       


      박정희 사후 권력의 공백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총칼로 짓밟으며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권력을 장악한다. 다시 한번 우리 역사에서 민주주의의 꿈이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37-1   무서운 병사

      37-2   시민들 무기를 들다

      37-3   진압된 광주

      37-4   새로운 독재자

      37-5   계속되는 투쟁



           즐거운 시간 되십시요... ~ applejack ~ 입니다


      As Time Goes By - 101 Strings Orchestra(With Trumpet Solo)

      Humphrey Bogart(험푸리 보가드) 와 Ingrid Bergman(잉그리드버그만)이
      주연한 영화 1942년에 제작한 "Casablanca"의 Tittle곡 입니다

      이곳을 크릭하시면 "험프리 보가드 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As time goes by


      You must remember this
      A kiss is still a kiss
      A sigh is just a sigh
      The fundamental things apply
      As time goes by

      And when two lovers who
      They still say, "I love you"
      On that you can rely
      No matter what the future brings
      As time goes by

      Moonlight and love songs
      Never out of date
      Hearts full of passion
      Jealousy and hate
      Woman needs man
      And man must have his mate
      That no one can deny

      It's still the same old story
      A fight for love and glory
      A case of do or die
      The world will always welcome lovers
      As time goes by

      The world will always welcome lovers
      As time goes by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이 걸 꼭 기억하게
      키스는 여전히 키스고
      한숨은 단지 한숨일뿐
      근본적인 건 그대로야
      세월이 흐른 뒤에도

      사랑했던 두 사람이
      아직 서로 사랑한다고 하면
      그 건 틀림없는 거야
      비록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달빛과 사랑의 노래는
      절대 빛바래지 않고
      가슴 가득한 정열
      질투와 미움도 마찬가지지
      여자는 남자가 필요하고
      남자는 짝이 있어야 한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어

      늘 똑같은 스토리지만
      사랑과 영광을 쟁취하려는 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지
      세상은 언제나 연인들에게 관대한 법
      세월이 흘러도

      세상은 언제나 연인들에게 관대한 법
      세월이 흘러도